경제
호르무즈 열리자 기름이 쏟아졌다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합의하면서 국제 원유시장이 빠르게 공급 과잉 국면으로 돌아서고 있다. 전쟁 기간 막혀 있던 중동산 원유가 한꺼번에 시장에 풀리자, 불과 몇 달 전 급등했던 유가는 전쟁 이전 수준까지 밀려났다.24일 현지시간 ICE선물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4.33% 하락한 배럴당 73.7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뉴욕상품거래소의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3.92% 내린 배럴당 70.34달러를 기록했다. 두 유종 모두 미·이란 전쟁 발발 직전인 2월 27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단기적인 물량 압박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원유 공급이 급격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정유사들이 선호하는 앙골라산 원유는 10년 만에 가장 큰 폭의 할인율로 거래되고 있으며, 일부 물량은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10달러 가까이 낮은 가격에 팔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원유를 사들이던 일부 중국 정유사들이 오히려 보유 물량을 시장에 내놓는 이례적인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중동산 원유 가격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두바이유와 아부다비 머반유 등 주요 중동 기준유는 이달 중순 이후 콘탱고 구조에 진입했다. 콘탱고는 가까운 시점의 가격보다 먼 만기의 가격이 더 높은 상태로, 현물 시장에 공급이 충분하거나 과잉 상태일 때 자주 나타난다.

이번 공급 급증은 전쟁 기간 쌓였던 물량이 한꺼번에 풀린 영향이 크다. 지난 2월 말 미국의 이란 침공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전 세계 원유 수송의 약 30%가 차질을 빚었다. 당시 브렌트유는 4월 초 배럴당 140달러를 넘어서며 급등했다. 하지만 해협이 다시 열리자 가격은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평화협상 체결 전부터 UAE와 쿠웨이트 등 중동 산유국들은 미국 군의 지원 아래 제한적으로 원유 수송을 재개해왔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UAE의 석유 수출량은 6월 초 이미 전쟁 이전의 85% 수준까지 회복됐다. 여기에 억류돼 있던 물량까지 더해지며 시장에는 대규모 원유가 유입됐다. 이란도 미국의 공식 판매 허용 이전에 약 3000만배럴을 아시아로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UAE는 향후 수개월간 공급할 6000만배럴 규모의 원유를 연쇄 입찰 방식으로 판매하며 가격 하락을 부추겼다. 아시아 시장이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자 일부 중동산 원유는 유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단고테 정유소가 처음으로 UAE산 원유를 구매한 것도 중동산 원유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반면 미국산 원유는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전략비축유를 포함한 미국 원유 재고가 1984년 이후 최저 수준이고, WTI 가격 기준지인 쿠싱 지역 재고도 운영 최소치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아시아 정유사들이 이미 8월 물량을 충분히 확보한 만큼, 추가 공급은 수요 회복이 동반되지 않는 한 가격 하락 압력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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