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게임과 전통 문화재는 언뜻 보기에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인다. 현대 기술의 첨단을 달리는 가상 세계와 수백 년의 역사를 품은 유물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는 듯하다. 특히 외국계 게임 회사가 한국의 문화유산 보존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후원한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의아함을 자아낼 만하다. 그러나 세계적인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운영하는 라이엇게임즈코리아(이하 라이엇코리아)는 이미 13년째 이 특별한 여정을 이어오고 있다.

 

2012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과 약정을 맺은 이래, 라이엇코리아는 국외 문화재(국가유산) 환수 프로젝트에 누적 약 93억 원이라는 거액을 후원했다. 이는 단순한 일회성 기부가 아닌, 한국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을 되찾기 위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다. 지난 2월 3일 국가유산청이 환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경복궁 선원전 편액 역시 라이엇코리아의 든든한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복궁 선원전 편액은 단순한 현판이 아니다. 조선시대 궐 안에서 선왕들의 어진(초상화)을 봉안하고 의례를 지내던 전각인 선원전의 정체성을 담은 중요한 문화재다. '선원(璿源)'이란 '옥의 근원', 즉 '왕실의 유구한 뿌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환수한 이 편액에 대해 "바탕 판의 옻칠, 금을 사용한 글씨(金字), 테두리의 구름무늬 조각 등이 높은 현판 양식을 보여준다"라고 그 가치를 설명했다.

 

이 귀중한 문화재는 지난 100여 년간 행방이 묘연했다. 일제강점기 때 경복궁 선원전은 훼철되어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의 이름을 딴 사찰 박문사를 건립하는 데 자재로 사용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라진 편액은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전해진다. 이후 한 일본 건설업자의 소유가 되었다가 2023년에야 일본 경매 시장에 등장했고, 마침내 국가유산청이 환수에 성공한 것이다.

 

라이엇코리아의 후원으로 환수된 문화유산은 이번 선원전 편액을 포함해 총 7점에 달한다. 석가삼존도,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 책봉 죽책, 척암선생문집책판, 백자 '이동궁명' 사각호, 중화궁인, 보록 등이 그것이다. 이들 문화재는 모두 한국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담고 있는 소중한 유산들이다.

 

국외 소재 국가유산의 환수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전 세계 경매소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국외 국가유산의 가치를 조사하고 환수 과정을 주도하는 일은 국가유산청과 국외 소재문화유산재단의 주요 업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민간기업인 라이엇코리아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조혁진 라이엇코리아 대표는 "경매의 특성상 타이밍을 놓치면 유물을 환수하기 어려워 예산 사용에 대한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 예산은 집행 과정에서 복잡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민간기업의 후원금은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라이엇게임즈는 2006년 설립된 게임 회사로, 2009년 출시한 '리그 오브 레전드'가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 법인인 라이엇코리아는 'LOL'이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2011년 말에 설립되었다. 현재 국내에서 'LOL'은 10년 이상 PC 게임 부문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국제 대회인 'LOL 월드 챔피언십(일명 롤드컵)'이 열릴 때면 팬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거리응원을 펼치는 등 한국 게임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라이엇코리아가 국가유산 환수에 후원을 시작한 시점이 2012년, 즉 'LOL'이 지금처럼 압도적인 인기를 얻기 전이라는 사실이다. 라이엇코리아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2011년 말 한국 진출을 선언하는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오진호) 대표가 '우리는 한국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회상했다. 사회공헌 활동을 하기로 결정한 후, 내부에서 수많은 아이디어를 검토한 끝에 문화재 후원이 "꾸준히 우리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분야"라고 판단하여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외국계 게임사가 문화재 후원 의사를 밝히자 문화재청 측은 처음에는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몇 차례 상호 대면 미팅을 통해 라이엇코리아의 진정성을 확인한 후, 후원 약정을 맺게 되었다. 이후 문화재청에서 국외 소재 국가유산 환수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라이엇코리아의 본격적인 후원이 시작되었다.

 

'왜 하필 국가유산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조혁진 대표는 "게임도 문화의 일부"라는 점을 강조했다. "게임이라는 현대적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으로서, 한국의 역사적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환수하는 일에 힘을 보태면 플레이어들에게도 자부심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젊은 세대와 가까운 기업인 만큼 역사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갈 화자로 활약할 수 있겠다"는 비전도 밝혔다.

 

현실적으로 문화재에 관심을 갖는 층과 PC 게임 이용자들 사이의 교집합은 그리 크지 않다. 홍보 효과만 놓고 보면, 라이엇코리아의 국외 국가유산 환수 후원은 '가성비'가 떨어지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숭례문 복원 사업과 같이 문화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는 특별한 시기에는 다른 게임사들도 성금을 내거나 게임 내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그러나 라이엇코리아만큼 오랜 기간, 꾸준히, 그리고 많은 금액을 문화재 환수에 투자하는 게임 회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라이엇코리아 관계자는 이 사업에 '실리'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당장의 홍보 효과보다는 장기적인 인식 변화에 가깝다. 우선 내부 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향상되었다는 점을 꼽았다. "환수 뉴스가 나올 때마다 임직원들이 매우 자랑스러워한다"며, "게임은 여전히 '하위문화'로 여겨지고, 터부시되곤 하는데, 직원들 자신도 '게이머'이고, 사회적 시선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안다. 재직하고 있는 회사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뿌듯해한다"고 말했다.

 

또한 '게임과 무관해 보이는 좋은 일'을 게임 회사가 할 때 발생하는 선순환 효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게임을 모르던 이들이 국가유산 환수를 계기로 (게임에) 부정적 시선을 조금씩 거둔다. 게이머들도 더 존중받게 된다. 게임이라는 행위를 할 때 감수해야 할 위험부담이 낮아지는 것이다. 잠재적 고객이 늘어난다. 장기적으로 전체 게임산업에 이롭다."

 

이 국가유산 환수 후원 프로젝트는 라이엇코리아의 독자적인 사업이다. 조혁진 대표는 라이엇게임즈 본사가 이 활동에 대해 "'플레이어 중심'이라는 (본사의) 철학에 부합하는 대표적 활동이라며 공감을 보내준다"고 전했다. '플레이어 중심'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사회공헌 사업의 근본 동력이자, 'LOL'이 오랜 기간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LOL'은 지속적인 '패치'를 통해 게임의 크고 작은 요소를 개선하고, 이용자들의 피드백을 적극 반영해왔다. 라이엇코리아 관계자는 '플레이어 중심' 운영을 "게임을 출시했다고 끝이 아니고 마치 아이를 키우듯,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이엇코리아의 해외 국가유산 환수 후원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들은 이미 100억 원에 가까운 금액을 투입하여 게이머와 기성 사회 양측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게임을 즐기는 새로운 세대에게는 자신들이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자부심을 일깨우고, 기성세대에게는 게임이야말로 전통 문화유산의 새로운 적자(嫡子)라는 인식을 심고자 한다. 라이엇코리아의 이러한 노력은 게임과 전통문화라는 두 영역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세대 간 문화적 이해를 증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