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볼거리가 쏟아지는 뮤지컬도, TV나 영화로 익숙한 스타 배우도 없다. 떠들썩한 광고도 없었다. 그런데도 오로지 작품 자체의 힘과 관객들의 입소문만으로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객석 점유율 96%를 기록했다. 사실상 전체 매진이다. 올해 상반기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시리즈('유원', '파랑새', '전락')가 이뤄낸 놀라운 성과다.

 

이달 초 끝난 '유원'(각색 신재훈, 연출 전윤환)은 백온유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한 작품으로,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청소년극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른 관객들이 찾아와 눈물을 흘렸다. 탄탄한 텍스트와 과잉 없는 담백한 연출이 호평을 받았다.

 

지난 16일 막을 내린 극단 양손프로젝트의 '파랑새'(연출 박지혜)와 '전락'(각색·연출 손상규)은 개막 전부터 2주간 공연이 모두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파랑새'는 두 배우가 조명과 음향 외에 아무런 장치 없이 오로지 연기로 환상의 모험을 표현한다. '전락'은 배우 손상규의 1인극으로, 알베르 카뮈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이 세 공연의 객석 점유율은 무려 96%. 500석이 넘는 명동예술극장에서 대단한 볼거리나 화려한 음악 없이 연극만으로 이 정도 관객을 동원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프로그램은 2024년 4월 부임한 박정희 예술감독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초연 혹은 재연으로 관객의 선택을 받았지만, 상업화되는 극장 환경 속에서 재공연 기회를 얻지 못하던 작품들을 국립극단이 초청, 제작비를 지원하여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리는 프로젝트다.

 

지난해에도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배소고지 이야기: 기억의 연못', 이자람 판소리 '노인과 바다' 등이 호평을 받으며 'Pick크닉'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올해 역시 입소문만으로 표를 매진시키는 저력을 보여주며, 국립극단 제작 공연보다도 높은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조만수 연극 평론가는 "기획초청 Pick크닉은 약화된 대학로 생태계에 생기를 불어넣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앞으로도 작품 선정이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립극단 'Pick크닉'의 성공은 화려한 볼거리나 스타 배우에 의존하지 않고도, 오직 '작품성'만으로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는 침체된 대학로 연극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우리 연극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희망적인 신호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