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정치
美, 한국 '민감국가' 분류...尹 정부, 외교 시험대 올랐다

미국이 원자력 및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협력을 제한하는 '민감국가 리스트'(SCL)에 한국을 포함시킨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그 배경과 파장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이 조치가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의 퇴임 직전이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및 비상계엄 선포라는 국내 정치적 격변기에 이루어졌다는 점은 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우리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미국 정부 관계기관들과 긴밀하게 협의 중"이라는 매우 원론적인 입장만을 반복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 간 에너지, 과학기술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교섭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대응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는 지난 10일 국내 언론 보도를 통해 '민감국가' 포함 사실이 알려진 이후 일주일 가까이 지나도록 원인과 배경은 물론, 정확한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비공식 제보를 통해 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답변, 미국 측으로부터 공식적인 통보나 사전 언질조차 받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5일에는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한 시기가 지난 1월 초였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이 역시 우리 정부가 아닌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라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는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바이든 정부에 공을 들여온 노력이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그 충격을 느낄 새도 없이, 민감국가 효력 발효(4월 15일) 이전에 미국을 설득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가 주어졌다. 그러나 촉박한 시간을 고려할 때, 결과를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한국의 민감국가 분류가 최종 확정된다면, 우리 경제와 산업은 물론, 한미 관계 전반에도 심각한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유를 알아야 미국을 설득하든, 다른 대안을 모색하든 할 텐데, 우리의 어떤 점이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16일,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서로를 탓하는 소모적인 공방만 벌였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탄핵 남발이 외교적 대응을 지연시켰다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내란 행위가 초래한 외교 참사라고 맞받아쳤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1월 10일 제이크 설리번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그는 당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충격적이었고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이제 헌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탄핵 남발' 대 '불법 계엄'이라는 여야 간의 공방과는 별개로, '자체 핵무장론' 역시 이번 사태의 유력한 배경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윤 대통령은 2023년 1월, 북한의 도발 수위가 더욱 높아지는 상황을 전제하기는 했지만,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하거나,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발언하여 미국의 우려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물론 윤 대통령은 불과 몇 달 뒤인 그해 4월,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한미 핵협의그룹(NCG) 신설을 대가로 핵무장 포기를 약속했다.
당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자적으로 핵 개발을 하고자 하는 서울의 '외도'(dalliance)가 점증하는 위험 요인이 되고 있는데, 이번 선언은 이를 선제적으로 제어한 (미국의) 영리한 노력"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일각에서는 전문가, 여당 유력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핵무장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 표명 없이 모호한 태도를 유지했고, 이는 미국의 의구심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키웠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여권 지도층의 무책임한 언행과 미숙한 전략에 대한 책임론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응과 함께, 외교적 노력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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